로운 왕국의 소드마스터, 최한이 갑작스레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오늘로 꼭 일주일째.
최한이 왜 사라졌는지에 대해 전혀 잡히는 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상념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주변의 풍경이 뒤바뀌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살이 바위에 부딪쳐 깨어지는 낯선 소음이 들려오고, 주변에는 온통 안개가 자욱합니다.
수 명.:SAN RollValue: | 85/42/17 |
Rolled: | 1 |
Result: | Critical |
케일 헤니투스:SAN RollValue: | 85/42/17 |
Rolled: | 15 |
Result: | Extreme |
당신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조악한 선착장과 같은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착장이라고 해도 제대로 된 정박시설은 없습니다.
다만 조각배를 매어둘 만한 말뚝이 꽂혀 있을 뿐입니다.
주변에는 온통 안개가 자욱하고 한밤중인 듯 볕이 들지 않아 캄캄합니다.
돌로 만들어진 조악한 가로등 같은 것이 드문드문 늘어서 있어 주변을 분간할 수 있습니다.
케일 헤니투스: (들릴 리 없는 비현실적인 물소리. 정신을 차리고 바라본 주변 환경 역시 제가 있던 저택과는 너무도 다른 장소였다.) 여긴... 어디야?
당신이 주변을 돌아볼 즈음, 짙은 안개 속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천천히 다가옵니다.
네 (GM): 관찰이나 듣기 판정 가능합니다!
케일 헤니투스: (안 그래도 누군가를 향한 생각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이 상황은 또 황당한 일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걸 깨닫게 할 뿐이었다. 누군가의 인영으로 보이는 그림자를 차분히 바라보며) ...너는, 누구냐.
Listen RollValue: | 90/45/18 |
Rolled: | 11 |
Result: | Extreme |
묵직하지만, 조용한,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죽인 발소리.
이 발소리의 주인은 당신이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발소리의 주인은 천천히 당신을 향해 다가옵니다.
케일 헤니투스: (소리를 죽인 발소리를 들으며, 방금 전까지 저택에서 생각하고 있던 익숙한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렸다) 최한?
마침내 다가오는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최한은 평소와 다르게 생기가 없고 인형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케일 헤니투스: (익숙한 인영이 정말로 제 앞에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며,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생각나는 것은 정말 많았지만, 대화가 우선이다) 최한, 그동안 어디 있었나.
최한: ...최한?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얼굴로 그를 살짝 내려다본다. 어떠한 표정도, 감정도 떠오르지 않은 그 얼굴은 마치 어둠의 숲에 있었을 때와 같다.) 그게, 내 이름인가요?
케일 헤니투스: (되물어오는 이름에 말문이 막혔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최한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지 일주일째, 그동안 한참을 찾아다녔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저택에서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섬... 섬인가? 바다가 보이니 섬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최한을 만났다. 그런데 상태가 이상했다.) ...농담을 하는 걸로는 들리지 않는군. 그동안 여기 있었나?
최한: (그의 말에 입을 다물고 한참을 가만히 있는다. 생각을 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처럼. 혹은, 이제 막 움직일 수 있게 된 기계처럼. 멍하니 어둠 속에서도 붉은 머리가 빛나는 그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아마도요. 당신은 누군가요? 날 아는 사람인가요?
케일 헤니투스: (멍한 눈빛과 아주 당연한 질문에도 느리게 끄덕이는 고개가, 지금의 상황을 더 확실히 인식시켜주었다. 기억을 못 한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지금 최한은 그런 상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래, 아는 사람이다. 너는 왜 여기 있지?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나. 아니, 애초에 여긴 어디야? (영문을 모르겠는 곳으로 오게 된 것도 어이가 없는데, 지금 최한이 제정신이 아니다. 어떻게 하란 말이야?)
최한: (그의 말에 고개를 느릿하게 젓는다. 목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날 것처럼 굳고 어색한 움직임이었다.) 몰라요. 당신이 말한 것들 전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말을 하고 낮게 숨을 내뱉는다. 오랜만에 하는 말들이 벅차듯.) 당신은요? 내가 최한이면, 당신은 누군가요?
케일 헤니투스: (굉장히 굳어 있는 움직임이, 기계 같다. 아니, 인형인가? 자주 사용하지 않던 낡은 인형이 자아를 가지고 움직이게 된다면 지금의 최한 같을 것이다. 당황스러움이 물든 눈동자를 내리깔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케일, 케일 헤니투스다.
최한: 케일.. (이름을 기억하려는 듯이 한 번 소리 내어 발음해본다. 감정 없이 담은 이름이 허공에서 바스러졌다. 그리고선 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의지가 없는 인형을 찾는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케일 헤니투스: (대화는 무리인가. 지금 최한이 상태로는 유효한 정보를 얻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됐다, 우선 움직이는 게 좋겠군. 최한, 나와 함께 이 섬을 둘러보도록 하지.
당신이 주변을 돌아보니, 수심을 짐작할 수 없는 검은 물이 넘실거리고, 물과 돌로 된 땅의 일부분이 맞닿아 있습니다.
바위섬의 끝자락에는 배를 매어두기 위한 말뚝이 박혀있고, 돌로 된 가로등이 띄엄띄엄 박혀 있어 주변을 흐리게 밝히고 있습니다.
최한이 걸어 나온 장소는 방풍림과 같은 소규모 숲으로 보이며, 그나마 길처럼 보이는 것이 너머로 이어져 있습니다.
케일 헤니투스: (영 미심쩍은데, 움직이는 수밖에 없나. 나가는 길도 모르고.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긴 하지만, 일단 최한을 찾았으니 괜찮겠지.) 네가 왔던 길로 되돌아가 보자.
최한: (평소처럼 네, 하는 확실한 대답 대신 고개를 느리게 끄덕인다. 평소처럼 제가 안내하려 앞장서지 않고, 옆에 서 있기만 한다. 움직이는 대로 따르려는 것 같이.)
당신이 방풍림으로 향하자 최한은 당신의 속도에 맞춰 따라 움직입니다.
방풍림은 숲이라기에는 소규모로,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장소입니다.
섬의 서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방풍림 내부에서 생명체나 음식을 찾아보려 해도, 동물이나 과일이 열린 나무를 찾을 수 없습니다.
네 (GM): 자연, 생존술-숲, 식물학 판정 가능합니다 (케일은 안 찍었지만..)
네 (GM): 교육,, 익스트림 성공으로도 칠까...?
케일 헤니투스:EDU RollValue: | 85/42/17 |
Rolled: | 21 |
Result: | Hard |
케일은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작은 숲이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관찰 가능합니다!
케일 헤니투스:Spot Hidden RollValue: | 95/47/19 |
Rolled: | 48 |
Result: | Success |
당신은 가장 가까이 있는 나무에 적힌 어떤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나무에 날카로운 것으로 새긴 글자가 있습니다.
'배를 타고 섬을 떠나야 한다. 해가 뜨면, 영영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케일 헤니투스: (떠나야 한다고? 대환영이다. 하지만, 아까 그곳은 배를 묶어두기 위한 말뚝이 있을 뿐이었다.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말의 희망을 걸고 옆을 따르던 최한에게) 이곳에 배가 어디 있는지 알아?
최한: 배...? 아뇨,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다시 한 번 느릿하게 고개를 저어 보인다. 이미 해보았던 움직임이라 그런지 아까보다는 어색함이 사라져있다.)
케일 헤니투스: 그런가, 그럼 계속 찾아보는 수밖에 없겠군. (곧이어, 다시 앞을 보고 숲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점점 숲의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변은 조용합니다.
곧이어 당신은 먼발치에 있는 작은 마을을 발견합니다.
마을이라고는 해도 시골에나 있을 법한 작은 집이 대여섯 채 있을 뿐입니다.
마을에는 유독 안개가 짙게 끼어 있는 듯합니다.
케일 헤니투스: (짙게 끼어있는 안개를 잠시 바라보다, 이윽고 결심한 듯) 저 마을로 가보자. 쓸 수 있는 배가 남아있을지도 모르지. (라고 곁에 서 있는 최한에게 말을 건넸다)
최한: (무언가를 생각하듯 까만 눈을 한 번 굴려내다 바라본다.) 저기에서 배를 본 적은 없었어요. 사람들이 모여 지내는 장소긴 하지만.. 음, 역시 배는 없었어요. (말을 하며 다시 한 번 생각을 하지만 결론은 같았다. 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 헤니투스: ...? (방금까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 하는 사람처럼 굴더니, 지금은 저 마을이 어땠는지를 내게 설명하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조금 자연스러워진 것 같은 모습에, 한 번 떠보듯이) 그 밖에 기억나는 건? 이곳에 관해서든, 아니든. 뭐라도 괜찮다.
최한: (갑자기 쏟아진 질문에 조금 당황하듯이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가 제 입가에 손을 댄다. 부드러운 천을 덧댄 장갑이 입술을 스치는 감촉이 느껴졌다.) 어, 음... 아직까진 기억이 나진 않는데.. 뭔가 좀 뿌옇게 떠오르는 것이 있긴 해요.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요...
케일 헤니투스: (모르겠다. 지금 상황이 이해 안 가는 것도 그렇지만, 최한이 왜 갑자기 기억을 잃었는지도.) ...그래. 그래도, 뭔가 남아있을지 모르니 마을로 가보자. (지금 상황으로는, 희미한 네 기억을 다 믿을 수도 없으니.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말을 삼키며, 마을로 향한다.)
네 (GM): 여기서 아이디어(지능) 판정입니다!
케일 헤니투스:INT RollValue: | 80/40/16 |
Rolled: | 72 |
Result: | Success |
최한:SAN RollValue: | 65/32/13 |
Rolled: | 34 |
Result: | Success |
당신은 이 마을이 자신에게 무척 위험한 장소라는 직감이 듭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최한이 당신의 팔을 붙잡는 것이 느껴집니다.
최한: ...이 마을은 케일 님께 위험할지도 몰라요. 외부인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서. (조금 놀란 낯으로, 급한 몸짓으로, 그렇게 말하고선 뒤늦게 쥐었던 손을 떼었다.) ..아, 갑자기 잡아서 죄송합니다.
케일 헤니투스: ('케일 님', 익숙한 호칭으로 저를 부르며 팔을 잡아 오는 최한의 행동에, 조금 놀란 기색을 보이다가. 급하게 사과하며 손을 떼어오는 그 감촉에 아리송한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사과할 필요 없어. 외부인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최한: 그게.. (뭐라 말을 꺼내야 할까.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하지? 단어를 고리고 고르다 결국 미간을 슬쩍 찌푸린다. 어째서인지 그의 앞에서 그런 얼굴을 보이기 싫어 금방 풀어냈지만.) 잠시.. 조용히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케일 헤니투스: (이곳에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좀 더, 익숙한 모습이었다. 최한은 신중하다. 또 영리하다. 눈치도 빠르고, 그러니 제가 가는 길을 막았을 터. 직접 행동 하는 것과 아마도, 이곳에 있었던 것 같은 최한의 말을 듣는 것. 둘 중 어떤 것이 최선의 판단일지를 고민하다. 이내 답을 내렸다.) 그래. (어디를 가고자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따라가지.
최한은 조용히 몸을 낮춰 마을 근처로 진입합니다.
그의 뒤로 따르니, 마을 어귀에 서성이는 네 사람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대화를 몰두한 모양새라, 주변을 살피지 않고 있습니다.
네 (GM): 듣기로 대화를 엿들을 수 있습니다!
케일 헤니투스:Listen RollValue: | 90/45/18 |
Rolled: | 11 |
Result: | Extreme |
케일 헤니투스: (썩 듣기 좋은 대화는 아닌 것 같은데.)
최한: ... 이제 아시겠죠? (소리를 낮춰 조용히 말을 내뱉곤 왔던 쪽으로 턱짓한다.)
케일 헤니투스: (일주일. 일주일 동안 사라졌었던 최한은, 비교적 이곳이 익숙해 보였다. 어둠의 숲에서도 어떻게든 적응해서 살아남았던 녀석이니, 당연한가. 그리 생각하며 조용히 턱짓하는 곳으로 따라나선다.)
다시 돌아 나온 곳은 마을로 들어가는 쪽에 나있던 갈림길입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과 섬 동쪽으로 향하는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케일 헤니투스: 돌아가는 것은 별, 소득이 없을 것 같은데. (동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최한에게 물었다) 저쪽으로 가면 뭐가 나오는지, ...알고 있어?
최한: 저쪽에 숲이랑, 작은 오두막이 있어요. 그 외에 다른 뭔가는 없습니다. (나온 질문에 아는 것을 곧이곧대로 쏟아낸다.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것이 조금은 익숙해 보였다.)
케일 헤니투스: 그런가, 오두막이라.. (물어보는 질문에, 익숙하게 돌아오는 대답을 듣고는 조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네, 가보자. (섬 동쪽으로 향하는 길로 걸어간다)
최한: 네, 케일 님. (어깨와 허리를 곧게 펴고 그의 뒤를 따른다. 허리춤에 있을 검대를 잡으려다 아무것도 없어 허공을 잡았다 놓았지만, 그림자처럼 뒤에 붙어 걸어가는 모양새가 퍽 자연스럽다. )
섬의 동쪽으로 향하면 안개가 끼어 있는 숲이 보입니다.
섬 서쪽의 방풍림이 그저 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는 수준이었다면, 이곳은 키 큰 나무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는 숲입니다.
마을보다는 안개가 옅지만 숲 안쪽은 보이지 않습니다.
최한: 케일 님, 발을 조심하세요. 여긴 나무가 많으니 잘못하면 넘어지실 수 있습니다. (걱정이 되는 듯 그가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다가 무언가 생각나, 조용히 덧붙인다.) .. 물론, 넘어지시기 전에 제가 잡아 드릴 겁니다.
케일 헤니투스: 그래. (정말 일주일 동안 여기서 지낸 것 같은데. 그런 것은 둘째치고 점점 저를 대하는 태도가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이상했다. 기억...,하나? 물론 최한이,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농담을 짓껄이 놈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방금 마을의 그 녀석들이 이방인이 어쩌고, 하며 기억에 대해 언급한 것도. 그럼, 이 섬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든든하네.
최한: (든든하다는 말에 두 뺨이 슬며시 붉어진다. 배시시 웃는 얼굴은 뿌듯함과 기쁨, 이런저런 감정들이 뒤섞여 드러나있었다. 괜히 기쁜 마음에 앞장서, 그를 향해 손을 뻗어 보였다.) 그럼 넘어지지 않으시도록 제가 잡아드리겠습니다. (아. 너무 나섰나. 손과 말을 뻗고 나서야 든 생각에 조심스럽게 펼쳤던 손을 오므렸다.)
케일 헤니투스:(배시시 웃는 얼굴에, 엿보이는 기쁨과 감정들이 제가 아는 최한을 떠올리게 했다. 순하고, 선한 사람. 그런데도 어둠의 숲에서 살아나갈 수 있었던, 강인함과 끈기를 가진 자. 이윽고 건네져 오는 말과, 뻗은 손을 바라보며 눈으로 웃어 보이고는. 오므라든 손 위에 제 손을 겹쳤다) 그래, 잘 부탁한다.
최한: (이미 포기한 손에 얹어진 하얀 손. 검은 장갑 위로 얹어진 하얀 손에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거기에 눈웃음까지 겹쳐지니, 도저히 그를 똑바로 볼 수 없어 시선을 내리깐 채 고개만 끄덕이고 머리를 앞으로 향했다. 앞으로 흐른 머리카락 속에서 빼꼼히 보이는 귀가 붉었다. 온통 머리가 뜨거운데도 장갑을 끼고 있는 것이 아쉬워서, 그의 온기를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서, 곤란했다.)
케일 헤니투스: (시선을 내리깐 채 고개를 끄덕이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며, 손을 잡고 걸어가자니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슬쩍 보이는 귀가 빨갛다. 최한은 꽤 자주, 이랬던 것 같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찾아 헤맸던 온기가, 지금 제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배를 찾아서 나가자. 뒷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최한: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나무숲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밖으로 나가면 잡았던 손을 놓아야겠지. 숲 밖은 넘어질 것처럼 땅이 울퉁불퉁하지 않으니까. 아쉬움이 마음 한곳에 들이차는 것이 느껴지지만 애써 무시하곤 그를 제 앞에 설 수 있도록 잠시 걸음을 늦췄다.) 케일 님, 저기가 밖입니다. 이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오두막이 있을겁니다.
케일 헤니투스: (어두운 곳을 그저 손을 잡고 걸어가자니, 어서 집에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우리 집' 우리들이 함께하는 집. 손을 잡으며 이끌어가 준 이 덕분에, 넘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이윽고 오두막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짝 고개를 저어 정신을 차렸다. 그래, 오두막이라면 무슨 흔적이 있겠지.) 고맙다.
그런 최한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니 최한이 말했던 대로 숲 가운데에는 오두막이 한 채 있습니다.
케일 헤니투스: (숲 가운데 위치한 오두막이, 방금 그 마을을 비롯해 그래도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는 흔적을 보이는 게 신기했다. 눈을 뜨니 도착한 섬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존재하는 사람들. 그리고 최한. 최한은 왜 여기에 있나, 나는 왜 여기로 왔는가. 아니, 애초에 왔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단지 눈을 떠보니 이곳이었다.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정말 너무 많았다.)
...우선, 저 오두막을 뒤져보자.
오두막은 꽤 오래 사람이 살지 않은 듯 황폐한 분위기지만 벽이나 문은 그다지 삭아 있지 않습니다.
최한: ..안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버려진 오두막인가봐요.
케일 헤니투스: 그런 것 치고는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 않은 게 신기하군.
낡고 더러운 책상과 걸상, 그리고 짚을 넣어 만든 구식 침대 같은 것이 좁은 집 안에 놓여 있습니다.
케일 헤니투스: 꽤 본격적인데. (낡고 더러운 책상 앞으로 가, 책상 위를 찾아봅니다)
케일 헤니투스: 일기인가, 이곳에 살던 사람의 내용이 적혀있을지도 모르겠군. (일기장을 펼쳐봅니다)
모르는 언어라고 생각했지만, 잘 보니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케일 헤니투스:Language(Own) RollValue: | 85/42/17 |
Rolled: | 67 |
Result: | Success |
나와 같은 누군가가 섬을 헤매게 될 때를 대비해 이 메시지를 남긴다.
들어온 곳으로 나가야 한다. 남쪽에 '눈'을 뱃삯으로 남겨 두었다.
해가 뜨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라. 섬의 망령들에게 쫓기지 마라.
붙잡히면 기억을 빼앗기게 된다. 그들을 없애버릴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케일 헤니투스: (일기장의 내용을 제대로 확인한 게 맞는지,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었다. 섬에 오래 있으면 수명을 빼앗긴다, 남쪽에 '눈'을 뱃삯으로 남겨 두었다. 해가 뜨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라. 망령. 망령에게 붙잡히면 기억을 빼앗기게 된다고? 머리가 싸하게 식어가는 기분이 들며, 곁에 있는 최한에게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최한, 너는 여기에 얼마나 있었지? 일주일인가?
최한: (평소와 다르게 다급한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지? 의문이 들었지만 고개만 살짝 기울였을 뿐이다.) 네? 어어, 아마도... 요? 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기억이 좀 흐릿한 부분이 있어서. (물어보는 것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다니. 민망하고 멋쩍은 마음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케일 헤니투스: (가만히 뒷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을 바라보다, 기억이 흐릿하다는 말을 듣고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최한이 사라진 기간은 분명 일주일. 일주일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최한이 망령을 만나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나가야 한다. 최한을 데리고, 자신도 지금 이곳을 나가야 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고 회로와 동시에, 그래도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 서둘러야겠군. 저쪽 침대에는 뭔가 없는 게 확실한가? (이윽고 구식 침대 앞으로 다가가 주위를 살펴본다.)
짚을 넣은 낡은 구식 침대입니다. 특별한 쓸모는 없을 것입니다.
최한: 침대는 아까 제가 확인해 보았습니다. 짚 사이도 뒤져봤지만 별 다른 것이 나오지는 않더군요.
케일 헤니투스: 남쪽으로 가는 방법은 알고 있나? (평소와 다름없는 최한의 모습을 보며, 그의 앞에서 한쪽 팔을 잡고 그리 물었다)
최한: (갑자기 잡힌 팔에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강하게 잡힌 것도 아닌데도 숨을 잘 쉬지 못 하겠기에, 마른 침만 한 번 삼키고선 고갤 끄덕였다.) ... 예. 오두막 아래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그다지 길지 않은 말이건만 목소리가 왜 이리 떨려 나오는지. 뒤늦게 헛기침을 하곤 흔들리는 눈을 애써 고정시켰다. 모든 것이 뒤늦은 채였다.)
케일 헤니투스: (순간, 떨려 나오는 목소리와 헛기침을 하며 흔들리는 눈을 고정하는 모습에, 무언가 크게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 내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 왜 이제서야?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눈앞의 있는 이를 찾아온 제 무능력함에 화가 났다. 동시에, 눈앞에 보이는 이의 모습이 너무도 한결같고, 눈에 선명하게 보일 것만 같은 마음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져, 서글펐다. 애써, 요동치는 감정을 삼켜내며 말했다.) 지금 당장, 그리로 가자.
최한은 당신에게 팔이 붙잡힌 상태로 오두막을 나섭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향하는 길로 발을 옮겼습니다.
최한: 아.. 그러고 보니 점점 날이 밝아지고 있네요. (하늘을 흘끗 보았다가 말을 슬며시 꺼낸다. 어쩐지 심각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꺼낸 말인데, 뒤늦게서야 해가 뜨기 전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 떠올라 입을 다문다. 후회가 입안에 감돌았다.)
케일 헤니투스: (분명 저를 위해서 내뱉은 것 같은 그의 말에, 잠시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췄다. 몸이 굳은 것만 같다. 일상적으로, 날이 밝아온다는 말을 했던 일주일 전에 그 사람과 지금의 그가. 갑작스럽게 처한 상황의 무게가. 그 모든 게 제 위로 고스란히 짓눌려져 오는 것 같았다.) ...그래, 곧 해가 뜨겠지. (그래서, 손에 힘을 주어 놓지 않으려 꽉 잡고 있던 그의 팔을 쓸어내리다. 어두운 숲에서, 제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 그가 해주었던 것처럼. 최한의 손을 힘주어 잡고,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러니, 함께 돌아가자.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놓지 않는다.
최한: (팔을 잡던 손이 점점 내려와 손안으로 들어온다. 장갑 위로 느껴지는 온기에 이번엔 아쉬움 대신 이상한 기분만 돌았다. 그의 말에 어린 비장함과 결심이 이상하게 멀게만 느껴져서. 케일 님. 저는 당신과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게 너무 기뻐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 기뻐하면 안 되는 상황인가요? 우리 앞엔 또다시 비극이 닥쳐오나요? 당신의 온기가 장갑처럼 나를 감싸 위기감이 옅어지는 기분이다. 비극이 멀게만 느껴졌다.) ... 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케일 님. 저도.. 저도 케일 님을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
섬의 남쪽으로 접어들수록 나무들이 가물어지고 황폐한 바위로 된 땅이 드러납니다.
안개가 자욱하고 어두운 가운데 먼발치에는 커다란 건축물의 그림자가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케일 헤니투스:Spot Hidden RollValue: | 95/47/19 |
Rolled: | 84 |
Result: | Success |
당신은 그것이 오벨리스크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오벨리스크는 섬 남쪽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벨리스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주변에 무릎 높이 정도의 비석들이 아무렇게나 꽂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케일 헤니투스: (최선을 다하겠다는 목소리를 되새긴 것도 잠시, 무릎 정도 되는 비석들과 꽤 높게 세워져 있는 것 같은 암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게, 뭐지...?
최한: (케일 님도 모르시는 것이 있구나. 신기한 눈으로 눈을 꿈뻑이다가 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로운 왕국의 사람이었다. 지구의 물건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 오벨리스크라고 하는 건축물이에요. 그, 어디에 쓰이는 것은 저도 잘.. 모르지만, 뭔가 기념석..? 같은 겁니다. (저도 만화에서 보아 아는 내용이지만 일단 뱉고 보았다. 그에게 무언가를 알려줄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기뻤다.)
케일 헤니투스: (이윽고 들려오는 최한의 목소리에 제 귀를 의심했다. 기념석? 이런 섬에 기념석이 있단 말인가. 대체 뭘 기념하기 위함이지? 상념이 드는 것도 잠시, 지금 제 귀에 들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놓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오벨리스크라 불리는 건축물 가까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한은 멋쩍은 듯이 주변을 둘러보다, 당신의 손을 슬쩍 놓습니다.
최한: 어.. 저는 이 주변에 있는 묘비들을 살펴볼게요. 그 동안 케일 님이 봐주시겠어요?
케일 헤니투스: (이상했다. 그냥, 기분이 그랬다. 슬쩍 멀어지는 그의 손이, 때문에 비어있는 자신의 손이, 어쩐지 서늘하고, 또 어색했다. 왜? 그래서, 답지 않은 조금 어린 아이 같은 고집을 부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같이 찾아. (그렇게 말하며, 멀어지는 손의 옷자락을 살짝 쥐고, 다시금 최한의 곁으로 다가갔다.)
최한: (온기가 떨어져 버린 손을 한 번 쥐었다가 폈다. 잠깐 쥐었을 뿐인데 떨어진 것이 이렇게나 어색하고 아쉽다. 아쉬운 마음이 끊이질 않는다. 옷자락 끝으로 느껴지는 그의 손에 불이 붙어 오는 것 같다. 점점 내 몸을 태워 올, 그런 불.) 아뇨, 어쩐지.. 저는 저 오벨리스크가 좀, 그래서. 다가가고 싶지 않아요. 어쩐지 불길하게만 느껴져서...
케일 헤니투스: (무언가가 불길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최한은 낯설지 않았으나. 불길하게만 느껴져서 피하는 최한은 어쩐지 낯설었다. 그렇지만, 고집은 한 번으로 족하다. 평생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을 면모를 보여준 것만 같았으니. 하지만, 아무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이윽고 눈을 꾹 감았다. 천천히 뜨고, 애써 잔잔하게 미소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리고 다시금 오벨리스크 앞으로 다가갔다)
최한: 전 그동안 묘비를 볼 테니 천천히 살펴보고 오세요. (저도 같이 미소를 지어 보이곤 제 옆에 있는 비석을 짚는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당신은 최한의 말을 뒤로 하고 다시 오벨리스크로 향했습니다.
가까이에 다가서니 그 표면엔 누군가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이 이름들은 흐르는 것처럼 천천히 오벨리스크의 표면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움직입니다.
케일 헤니투스:Spot Hidden RollValue: | 95/47/19 |
Rolled: | 27 |
Result: | Hard |
당신은 이 흐르는 이름들 사이에서 자신이 아는 이름,
즉 최한의 이름을 명확하게 찾아내어 인식합니다.
또한 눈높이 즈음에서 이 오벨리스크의 이름표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오벨리스크의 앞에 인위적으로 놓여 있는 낮은 나무 탁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무릎 정도 오는 허름한 나무 탁자 위에는 안경알 크기의 동그랗고 납작한 유리알이 놓여 있습니다.
케일 헤니투스: (죽음을 명시한 비석의 이름과, 익숙한 이름을 찾아내어 발견한 이후의 참담한 심정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항상 제 앞에 서 있던 주인공, 제 옆, 제 뒤, 어느 곳에서나 자신을 지켜주고, 함께 해줬던 최한이. 죽었다. 모두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도, 그 정도로 약한 사람이 아니니 괜찮다고 말했던 저였다. 지금도 제 곁에서, 부드러운 미소와 붉어지는 귀, 어색한 헛기침을 보이던 소년이, 죽었다고? 한 번에 받아들인 정보가 너무나도 많아,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이 섬은 무엇인가? 죽은 자들의 세상? 그들의 섬? 혹은, 절망이라는 이름의 지옥인가. 나무 탁자 위에 놓여있는, 동그랗고 납작한 유리알이 <눈>이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그런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네 (GM): <눈>에 지능이나 관찰력 판정 가능합니다.
케일 헤니투스:Spot Hidden RollValue: | 95/47/19 |
Rolled: | 48 |
Result: | Success |
참담한 마음을 삼키며 이리저리 살펴보다 이상한 속성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렌즈의 한쪽 면으로 보면 평범한 유리나 안경알처럼 맞은편이 넘겨다보이지만,
렌즈를 뒤집으면 거울과 같이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렌즈에 비친 당신의 머리 위에 빼곡한 숫자가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케일 헤니투스: (이건 무슨 용도의 거울이지, 무슨 숫자를 말하는 건가.)
케일 헤니투스: (안경처럼 맞은편이 넘겨다 보이는 돌을 손에 집고, 제 눈 위에 겹친 후, 최한을 바라본다.)
최한의 머리 위에 숫자 0이 그려져 있습니다.
케일 헤니투스: (체감하고 있는 모든 일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저는 숫자가 빼곡한데, 최한은 0이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저 끔찍하고 빌어먹을 비석만 바라보아도 쉽게 알 수 있을 터였다. 이래서, 이래서 최한이 보지 않으려고 했나. 다시금 눈을 돌려, 묘비 근처에 있는 최한에게 다가간다. 이렇게 눈에 잡힐 듯 선명한데, 지금 세상은 저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목구멍 밖으로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최한: (To GM) rolling 1d100
= 46
최한: ..아, 케일 님. 다 보고 오셨나요? (비석 앞에 쪼그려 앉아 적혀진 긁을 보고 있다 인기척이 느껴져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제 미소가 어딘가 굳어 있다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뭔가 알아내신 것은 있나요? 해가 뜨기 전에.. ..나가야 하잖아요.
케일 헤니투스: 그래. (먹먹하게 떨리는 목을 진정시키고, 내뱉은 목소리는 제가 듣기에도 조금 불안정했지만 그리 심하지는 않아 보여 다행이었다. 지금 여과 없이 밀려오고 있는, 생각과 기억, 두통. 마음속 밑바닥까지 밀려오는 것 같은 무력감과 피로, 상실감. 형용할 수 없는 그 모든 게 밖으로 다 새어 나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해가 뜨기 전에. 너는? (최한이 해가 뜨기 전에 나가야 한다고 언급하는 건, 어째선지 자신뿐이다. 아니 어째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의미한 물음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케일은 그렇게 물었다.)
최한: (그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언제나 무덤덤하고, 평온했던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쓸데없이 좋은 귀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나의 귀에 당신의 흐트러진 숨소리마저 들렸다. 왜 그래요. 무엇을 봤나요. 짐작이 가는 것이 머리에 스쳤지만 나는 그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케일 님, 갑자기 뜬금없지만요, 저, 사실, 이제 기억이 전부 났어요. 기억이 난건 좀 되긴 했는데요, 제일 중요한 것은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말을 하다 입을 꾹 다문다. 감정을 갈무리 해낼 필요가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천천히 숨을 고르며 눈을 서너 번 더 감았다 뜬 후에야 입을 다시 열 수 있었다.) ... 케일 님. 이 섬에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케일 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나는.. 나는, 이미 죽어서요, 그래서, 그래서...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입을 열수록 점점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는 채, 같은 말만 더듬으며 연신 반복했다.)
케일 헤니투스: (정리되지 않은 말을 줄줄 내뱉는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며 말하던 그의 침묵이, 천천히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뜨는 그 모습이. 여전히 제 곁에 있던, 그 17살의 소년 같아서. 문드러진 속에서도 서글픈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그래서, 그 뒤에 이어질 말이 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가만히 걸음을 옮겨, 처음으로 제 앞에서 떨고 있는 영혼을 끌어안고, 잔잔한 손길로 그 등을 토닥이며, 자신 역시 아껴두었던 말을 꺼냈다. ) 최한, 나는 찾는 사람이 많은 몸이다. 너를 데려갈 방법이 없다면, 내가 여기 남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 (평소보다 길어지는 제 말이 어색했다, 어색했지만 그래도. 꼭, 전해줘야 할 말이 있었다) 늦어져서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최한: (저보다 조금 작은 키에, 훨씬 얇은 팔이 나를 감싸온다. 그의 품에 다 들어가지 못하는 몸이건만 어쩐지 영혼까지 안겨들어가는 느낌이라. 숨과 함께 참았던 눈물이 하나, 둘, 비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눈물 비로 모든 것이 쓸어 내려져라. 미련도, 욕심도, 슬프기만 한 이 마음도. 당신과 다르게 투박하고 거친 손을 뻗어 저도 끌어안는다. 품에 빠듯하게 들어오는 온기에 눈물이 멎지 않는다.) 응.. 응, 알아요. 나도, 케일 님이 꼭 나갔으면 좋겠어요. 찾는 사람이 많이 않더라도요, 케일 님이라도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케일 님을 지금이라도 뵌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걸요. 이렇게.. 제대로 된 인사를 할 수 있어서, 그래서, 좋아요. 좋아요, 케일 님. (그와 함께 죽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살아줬으면 하는 것 역시 사실이라. 이 더러운 욕심과 욕망에 그를 꺾고 부술 수 없어, 나는 욕망 하나 없는 사람처럼 말하며 연신 울었다. 좋아요, 좋아해요, 늦었지만 좋아합니다. 뒤늦은 고백이 비와 뒤섞여 쏟아진다. 고백은 고백이 아닌 것처럼 입에서 타고 감정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는 당신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되기에, 뒤늦었음에도, 죽었음에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연신 속삭였다.)
케일 헤니투스: (처음으로 최한의 눈물을 보았다. 처음으로, 최한이 울며 진심을 말하는 것을 느꼈다.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겪고 싶지 않았던, 그의 죽음을 겪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를 두고 죽을 수는 없었다. 만난 것만으로도 좋다고 말해주는, 선량하고도 늘 제 곁을 지키던 17살 소년이. 이렇게 애절한 목소리로 제게 말해주는 것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늦었지만 좋아한다는 그 말에. 지금까지 자신도, 언젠가. 언젠가 모든 게 끝나면. 치열하고 생명을 부지하기 바쁜 외줄 타기 같은 삶 위에서, 그래도 언젠가 여유와 행복이 가득 찰 수 있는 날이 오면. 들려주려고 했던, 그 무의미하고도 비밀스러운 대답을 꺼내 놓았다) 나 역시도, 좋아해. 좋아한다. 최한, 너를. (늘 저보다 조금 앞에 서서, 제 흑단 같은 머리칼을 꼭 닮은 검은 검을 들고 서 있던, 17세에 머물러버린 소년과 청년 사이의 경계 그가. 늘 붉어지는 귀와 다정한 눈동자를 숨기지 못했던 그가. 좋았다고. 너무 늦어버린 시간에, 후회가 가득할 녹진한 고백을 뱉어내었고. 그저 마음속으로, 조용히 울 수밖에 없었다.)
최한: (귓가에 떨어진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비는 폭우가 되고 만다. 케일 님, 그거 아시나요? 나는 정말 오래전부터 당신을 좋아했어요. 사랑했어요.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있나요. 내가 좀 더 빨리 당신에게 내 마음을 말했어야 했는데.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길고 긴 절망의 시간 끝에서 나는 행복을 맺지도 못하고 결국 이렇게 사라지고 마네요.) ...흑, 아.. 케일, 님.. (대답하려 연 입에서 결국 울음소리가 새고 말았다. 이것이 나의 끝이라면, 내 감정의 끝이라면. 당신을 웃는 모습으로 배웅하고 싶었는데. 내 두 눈을 묻은 그의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죽었으면서 눈물은 왜 나오는 것인지. 뱉지 못해 고여서 썩은 감정이 진물처럼만 느껴졌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도 자꾸 후회가 맴돌아 숨이 막혔다. 울음이 내 목을 조여온다. 컥컥거리며 연신 흐느끼던 나는, 한참 후에야 그의 품에서 고개를 뗄 수 있었다.) ..대답, 고마워요. 정말로요. (차라리, 차라리 좋아한다고 대답해주지 않았더라면 가슴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까? 비참함에 당신을 원망해보다 제 졸렬함에 치를 떤다.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얼굴엔 여전히 눈물이 가득한 채였다.)
케일 헤니투스: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 모습이 곧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지금 뱉어낸 제 고백은, 이기적이었다. 그런데도 고맙다고 말하는 그 선량함이 놀라울 정도라 말문이 막혔다. 갑작스럽게 흘러들어온 너무 많은 정보에,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했던 제가 흘려버린 후회 가득한 허점. 언젠가, 너를 떠올린다면. 나는 지금 내 마음을 전한 걸 후회할까? 그저 조용히 손을 뻗어, 흐트러진 네 앞머리를 정리하고. 앞으로 다시는 전할 수 없을 제 진심을, 그 이마에 눈을 감고 짧게 입 맞추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제 끝이다, 시간이 흐르면 해가 뜬다. 빛이 이 세상을 비추기 전에. 어둠을 본질로 두는 너와 서 있을 땅 바닥을 잘못 찾은 내가. 서로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최한,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한다. 나를 배웅해줄 수 있나?
최한: (눈물이 가득 고여 뜨거운 얼굴이었는데도 이마에 닿은 입술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뜨겁게 느껴졌다. 뜨겁다 못해 아팠다.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울을 본다면 마지막이라는 이름으로 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죽을 때까지 이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입맞춤은 잊을 수 없는 사랑이자, 행복이고, 영원한 저주였다. 다시 한 번 차오르는 눈물을 급하게 소매로 훔쳐내고선 무너졌던 미소를 끌어올린다. 아까보다는 조금, 평소 같은 웃음이었다.) 네, 물론이죠. 케일 님. 저는 케일 님의 호위인걸요. 오히려 제가 배웅을 할 수 있도록 부탁하고 싶었어요. ...그럼, 출발할까요? (약간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평소처럼 가장하여 말하곤 손을 내민다. 넘어지지 않도록, 떨어지지 않도록. 아니, 이건 내가 당신을 붙잡지 않도록 당신을 잡는 것이었다. 간절한 매달림을 속에서 죽이고 죽여, 피투성이가 된 절박함이었다.)
케일 헤니투스: (망설임 없이 내민 손을 잡았다. 질질 끌지 않는 게 좋다. 왜냐면, 내가 아는 최한은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하니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러니, 지금 뻗어오는 손길과 부드러운 말 역시 사탄과도 같은 유혹을 뿌리치고 뻗어오는 것이리라. 어차피, 죽음이라는 건 인간에게 평등한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내가 다시 너를 만날 날이 올 것이다. 아주 먼 미래가 되겠지만, 어쩌면 별 것 아닌 아주 사소한 것이 계기일 수도 있다. 그렇게 언제든 나에게 죽음이 내려질 수 있다. 그럼, 나는 기꺼이 죽음을 수용할 것이고. 기쁜 마음으로 다시 너에게 오겠다. 지금 내 귓가를 울리는 떨리는 너의 목소리는, 마치 새하얀 물속에 독을 푼 듯이 유려하게 일렁이며 내 귓가에 고일 것이고. 네가 한 번 닿았던 이 입술은, 죽기 전까지 그 누구도 허락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게, 사랑하는 이를 두고 갈 수밖에 없는. 나의 각오이자 맹세였다.)
최한은 당신의 손을 잡은 상태로 앞장서 나아갑니다.
문뜩 하늘을 보니 해가 뜨기 직전인 듯 어두웠던 주변이 희미하게 밝아져 있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섬의 남쪽에서 섬의 서쪽으로 한 바퀴 돌아 움직입니다.
하지만, 돌아온 서쪽엔 여전히 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최한: 놓친 것이 있는 걸까요? (검은 물만 찰랑대는 곳을 보다 그를 바라본다. 잡은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이대로 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행복하고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저 자신이 역겨웠다.)
케일 헤니투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잡힌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었으나 그것이 조금, 기분 좋았다. 자신은 살아야 한다, 그 목적을 잃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저, 눈앞의 소년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손을 쥐어오는 그 감촉이 좋았다. 아마, 이것도 지금이 마지막이겠지만.)
최한: 제가, (제가 이대로 당신과 있어도 괜찮을까요? 여기서 케일 님과 최후를 맞이해도 될까요? 말이 되지 못한 욕심이 목 안에서 들끓었다. 그것을 가까스로 삼켜내곤 손을 더욱 꽉 쥐었다가 느슨하게 풀어냈다. 그의 발목을 잡지 않기로 했으니 잡아선 안 된다. 더 이상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나는 죽었고, 그는 살아있으니. 죽은 자가 산 자를 탐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제가 마을에 한 번 다녀올까요? 그곳에 놓친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전에 가봤지만 괜찮았으니까 저만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케일 헤니투스: 마을에...? (문득, 그 이야기를 들으니 그 수상한 사람들 때문에 들어가 보지 않았던 마을이 생각났다. 하지만, 지금 가도 괜찮을까? 해가 뜨기 직전이다. 너는 마지막까지도, 나를 대신해서 그곳까지 다녀오겠다는 건가. 그 한결같은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고 신기해서, 시야가 뿌옇게 변하는 느낌에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꽉 쥐어오는 손아귀의 힘에서, 체온과 함께 진득한 애정이 쥐어졌다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 그럼 기다리도록 할까. 대신, 이 다음은 최한. 네가 기다려라. (네가 돌아오고, 내가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내가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최한은 미소를 지으며 끄덕이곤 북쪽을 향해 갑니다.
그 배는 언제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말뚝에 매인 채 떠 있습니다.
케일 헤니투스: (떠 있는 배를 바라보며, 살짝 망설인다. 뭔가가 부족해서 마을로 갔던 게 아니었나? 인사, 어떡하지. 마지막으로 웃으며 헤어지고 싶었는데, 배가 지금 나타난 걸 보아하니 지금 타야 한다는 것만 같았다.)
인사는, 해야지. (결심을 굳히고, 황급히 최한이 들어간 방풍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냥, 한 번만. 배가 왔으니. 이제 괜찮다고. 나를 위해 뛰지 않아도 된다고. 딱, 그 정도만.)
최한은 아직 방풍림에 들어간지 얼마 안 되었는지, 당신의 발걸음으로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습니다.
최한: 케일 님? 왜 여기에..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해,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가 움직인 것엔 필연적으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이 내에게 내려지는 어떠한 선고가 아니길 빌며, 그의 입에서 내려질 말을 기다렸다.)
케일 헤니투스: 해안가에 배가 왔다. 정확히는, 네가... 떠나고 나서. (분명, 최한의 이름이 이곳의 비석에 적혀있었다. 그래서, 배가 오지 않았던 걸까? 이미, 여길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일까?) 그러니, 이제. 나를 위해서. 뛰지 않아도 돼.
최한: 아. (짤막한 소리가 입에서 터졌다. 단어조차 없는 숨소리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이해와 깨달음, 그 외의 이런저런 감정이 뒤섞여있었다.) ... 그럼, 여기에서 작별 인사를 해야겠네요. 내가 또 마중을 나가면 배가 또, 사라질 테니까요. (양손을 천천히 올려 그의 두 손을 붙잡았다. 검은 장갑에 싸인 채 움틀 거리며 그의 하얀 손을 얽는 것이, 어쩐지 멀게만 느껴졌다.)
케일 헤니투스: (두 손을 마주 잡아 오는 것을 바라보며, 검은 장갑의 부드러운 천 느낌이. 그 손의 주인을 닮은 투박한 손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곳에 온 이후로, 처음 보이는 웃음이었다. 당황스럽기만 했고, 이곳에 결국 너를 두고 가야 한다. 손을 쓸 수 있는 범위를 넘었고, 나는 세상에 타협하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언젠가 꼭 원하는 바를 이루어냈으니) 또, 만나러 올게. 약속한다. (그리고, 양손에 조금 힘을 주어, 제게 맞대어진 손을 잡고, 눈을 마주했다. 최한이 종종, 제게 그랬던 것처럼.)
최한: ..응, 우리 꼭, 다시 만나요. (마주친 눈에서 사랑을 느낀다. 나의 삶은 나무로 빽빽한 검은 곳으로 시작해서 나무가 듬성듬성 난, 빛이 차오르는 곳에서 끝난다. 이후에 남을, 삶이라고 부를 수 없는 시간은 나에게 영 의미가 없는 일이라서.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려 그의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표정, 숨, 눈동자, 감정까지 전부 검은 액자에 넣어 내 마음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둘 것이다. 내가 기억을 더 이상 못하게 되더라도 떠오를 수 있도록.) 케일 님, 잠시.. 눈을 감아 주시겠어요? 싫다면 뜨고 계셔도 괜찮아요.
케일 헤니투스: (더 이상 덧붙일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저, 부탁하는대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최한: (붉은 속눈썹이 팔랑이며 닫히는 것을 바라본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냘파 보이는 움직임. 그 모든 순간이 선명하게 보여, 이 순간을 내 속에 박제하는 것만 같았다. 한 손을 올려 천천히 그의 뺨을 감싼다. 장갑 위로 그의 온기가 다시 한 번 느껴졌다. 떨리는 숨을 삼켜낸다. 감정이 목을 막아와 다시 한 번 숨이 막혀왔다. 천천히, 아주 느린 움직임으로 그의 입술과 마주한다. 약간 거친 저와 다르게 보드라운 입술의 감촉이 느껴진다. 순간적으로 짧은 행복이 심장에서 터졌다. 이 모든 순간이 찰나와도 같아 아름다운 폭죽처럼 느껴졌다. 이 순간을 하나라도 놓칠까, 그는 눈을 감았지만 나는 감을 수 없었다. 시야에 들어찬 붉음이 나를 설레게 하였기에. 나는 이게 정말 사랑이구나, 멀거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짧지만 길게 느껴진 입맞춤 끝에 천천히 고개를 떼내었다. 입술에 남은 감촉에 목이 바싹 말라와 마른침을 삼켰다.) 마지막.. 이니까요. 저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케일 헤니투스: (가만히 눈을 감고 기다리고 있는 어둠 속에서, 잔잔하게 다가온 것은 타인의 입술이었다. 정확히, 사랑하는 이의 입술이었다. 답지 않게 긴장되는 기분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 순간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입술에 가만히 내려앉는 온기가, 죽은 자의 온기라는 것이 전혀 믿기지 않아서. 다시 한번 속이 울렁거렸다. 두고 가는 것이 너무도 아쉬워, 아무리 약속을 해도 안타까운 최한의 삶이 서글퍼서, 제 연인이 된 그와 이렇게 이별한다는 게 슬퍼서. 고집을 부려 돌리고, 또 돌린 움직임이 딱 한 번의 맞물림으로, 행복을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천천히 멀어지는 게 느껴지는 그의 체온과 인기척에, 살짝 눈을 떠 보이고) ...잘했어.
(그리고 그제서야, 정말로 놓기 싫었던 그 손을 살짝 풀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한아, 또 보자.
최한: (한아. 한아. 당신의 입에 담긴 내 이름이 그렇게나 달았던가. 그 한 마디로 나의 비극은 모두 씻기는 것 같았다. 지금이 정말로 나의 끝이라면, 영원한 마무리라면. 당신의 말로서 나는 해피엔딩으로 완결이 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 만나기를 약속했기에,)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언제까지고요. 그러니 천천히 오세요.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웃음을 지어 보일 수 있었다.)
케일 헤니투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움직여, 늘 그렇듯 선한 인상으로 부드러운 말을 내뱉는 그에게 살짝 웃어 보이고는, 등을 돌려 선착장으로 돌아간다.)
당신은 선착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조각배는 여전히 말뚝에 매여있는 채입니다.
케일 헤니투스: (조심스럽게, 말뚝에 매여있는 배를 타며. 이제, 돌아간다는 사실에. 많은 것이. 너무 많은 것이 제 몸 위로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말뚝에 매어져 있던 밧줄이 저절로 풀린 다음 배는 혼자서 움직입니다.
안개에 둘러싸인 섬을 뒤로하고 해가 떠오르는 물 위를 건너며 돌아보았을 때.
선착장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섬 남쪽의 묘비에 꽂혀 있던 비석엔 이름이 쓰여 있지 않았습니다.
사인만 쓰여있던 비석에 최한의 이름이 새겨지더니,
한편, 배에 올라 현실로 돌아온 케일은 저택에 덩그러니 서 있는 자신을 깨닫습니다.
당신이 기억하고 있던 시간에서 몇 시간 흐르지 않은 상태입니다.
곧이어, 식솔들이 실종되었던 최한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해옵니다.
당신의 입술에 아직까지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